억울한 옥살이 情報首長과 간부들 사면·복권돼야
염돈재. 전 국정원 1차장.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 대학원장
전·현직 국정원장 4명 동시 수감은 참사
‘국고손실죄’ 적용 논란…정보기관 초토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나라 어느 한 곳 성한 데가 없지만 안보 분야 상처는 특히 심각하다. 9·19 군사합의로 휴전선 정찰비행이 금지되고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와 해안 철조망이 철거돼 북한 기습공격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 병력자원 감소를 이유로 27사단 등 전방 배치 정예사단들을 먼저 해체해 전방이 텅 비게 됐다. 문 대통령의 군 경시(輕視) 태도로 군의 명예, 기강,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민간단체인 군인권센터의 주장을 근거로 하루아침에 국군기무사령부를 해체했다. 공관병 말 한마디로 4성 장군이 감옥에 갔고 망신주기 수사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장병 인권을 이유로 상급자의 지휘를 무력화시켜 국군을 ‘보이스카우트’ 군대로 만들었다. 세계 최정예 대한민국 국군이 ‘민병대’가 됐다는 군 원로들의 탄식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가장 참변을 겪은 곳은 국정원이다. 문 정부의 국정원 무력화 작업은 문 정부 출범 다음 달부터 시작됐다. 서훈 국정원장은 취임 직후 적폐청산 TF를 출범시켜 소위 ‘27개 의혹사건’의 전면 조사에 들어갔다.
현직 257명, 전직 94명 등 351명이 검찰조사를 받았고 현직 7명, 전직 39명 등 46명이 재판을 받았다. 현재까지 38명이 유죄가 확정됐고 4명이 재판계류 중이며 4명은 무죄가 됐다. 이와는 별도로 500명이 넘는 직원이 마구잡이 감찰조사를 받았다. 그 큰 소동 끝에 ‘적폐사건’ 연루가 확인돼 징계 받은 직원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과거사 청산작업에 협조한다면서 국정원 서버와 문서를 샅샅이 뒤져 부마항쟁 자료 132건 1,447쪽, 5·18진상규명 자료 101건 6,888쪽 및 영상자료 258건, 세월호 관련자료 68만여 건을 마구잡이로 외부에 제공해 국정원에는 비밀이 없어졌다. 이제 국정원은 완전히 초토화됐다.
전직 원장 4명에 적용된 죄목과 형량을 보면 기가 막힌다.
원세훈 원장은 41개 혐의로 8년간 200회 넘게 재판을 받은 끝에 26개 혐의가 인정돼 총 14년 2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대부분 혐의가 국정원법 위반 범주인데 개개 혐의를 살라미식으로 잘라 2018년 한 해 동안 모두 아홉 번 기소됐고, 나중 법원의 병합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8개의 재판이 동시에 열려 원 전원장은 하루에 세 차례씩 각각 다른 법정을 오가며 재판을 받기도 했다.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원장은 국정원 특별활동비(특활비) 청와대 지원이 문제가 돼 특가법상 국고손실죄 등으로 각각 1년 6개월, 3년, 3년 6개월의 중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국고손실죄 적용의 타당성 여부는 많은논란 대상이 되고 있다. 국고손실죄는 회계 관계 직원에게만 적용되는 신분범(身分犯)인데, 국정원장은 회계 관계직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계관계직원등의책임에관한법률에 규정된회계 관계직원의 범주에는 중앙관서의 장(長)은 포함돼 있지 않다.
국고금관리법에 의하면 회계 관계직원은 반드시 재정보증에 가입해야 하나 국정원장들은 재정보증에 가입되지 않았다. 이제까지 중앙관서의 장(長)을 회계 관계직원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례가 단 한 건도 없다.
또 국고손실죄는 ‘국고손실’ 인식이 있어야 되는데 국정원장들은 그런 인식이 없었다.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지원은 역대 정부에서 지속돼 온 오랜 관행이고 예산전용은 정부 부처에서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전 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김대중 정부도 국정원 예산을 활용한 사례가 있다면서 이병기, 이병호 원장은 억울한 점이 있을 것이라 언급했고, 박지원 국정원장도 인사청문회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
1심에서 국고손실죄와 뇌물죄를 적용한 것과는 달리 항소심에서는 형량이 훨씬 가벼운 횡령죄를 적용한 것도 국정원장을 회계 관계직원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이 회계 관계직원으로 최종 판단함으로써 국정원장들은 중형을 받게 됐다.
이 때문에 국정원장들에 대한 국고손실죄 적용은 법조계에서도 논란 대상이 됐고 국정원장들에 대한 중형선고가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적폐청산을 합리화하고 국정원을 무력화하기 위한 억지춘향식 꿰맞추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몰이’에 희생된 국정원 간부들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이 1,000여 명의 댓글부대를 동원해 추진하고 있는 광우병·천안함·세월호 괴담 전파 등 사이버 심리전에 대처하기 위한 방어심리전 활동을 하다가 소위 ‘댓글사건’으로 기소된 유某 단장의 경우 정치관여성댓글로 특정된 댓글이 총 2,200여 건으로 전체 댓글의 0.0045%에 불과하고 정치관여성 댓글에 투입된 예산도총 10만 원 정도인데 국고손실죄로 1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김모 국장도 마찬가지다. 법원이 반국가단체로 판단한 단체 간부의 동향 수집을 했는데 불법사찰로 7개월 실형이 선고됐다. 다른 김모 국장은 해
외 첩보에 따라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 1억 달러 대북 송금설 확인 활동을 했다가 2년 형이 선고됐다. 월간조선에 의하면 문제의 비자금은 총 10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규모이고 미국 FBI도 내사 중이던 사건이다.
이런 정보활동은 세계 어느 정보기관이든 추진하는 가장 기본적인 업무인데 이를 불법사찰이라 한다면 정보기관은 무슨 일을 하라는 것이며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은 어떻게 지키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더욱이 최고 정보기관 수장(首長)들이 대통령에게 불법자금을 바쳤다가 4명이 동시에 감옥에 갔다는 것은 세계에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참사이고 형편없는 후진국이나 3류 정보기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적폐청산의 진실을 알리고, 각국 언론과 정보기관 파일에 입력돼 있는 잘못된 기록들을 수정하여 바닥에 떨어진 대한민국의국격(國格)과 국정원과 전·현직들의 명예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 전직 1,500여 명이 작년 8월부터 ’전직 국정원장 등 사면·복권 운동‘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보기관은 절취, 유인, 기만, 흑색선전, 암살, 테러 등 ‘더러운 일’(dirty
work)을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조직이다. 정보기관이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이들이 국가를 위해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더러운 일’에 헌신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명예를 존중하는 것이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문 정부처럼 마구잡이로 전직 원장과 고위간부들을 감옥에 넣는다면 정보기관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국정원 전·현직들은 지난 연말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이 있으면 국정원장과 간부 사면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뇌물죄 한명숙 전 총리와 내란선동죄 이석기 전 의원은 사면, 가석방됐으나 팔십 고령에 평생을 국가를 위해 헌신해 온 국정원장과 간부들은 아직도 감옥에 있다.
문 정부가 사면·복권을 않는다면 윤석열 정부가 이들의 사면·복권을 신속히 단행해야 한다. 이들 같은 애국자들을 우대하고 존중하는 것이 윤당선인이 중시하는 국가안보 강화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